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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애니

충격에서 감동으로, 좀비 랜드 사가 리뷰

by 활자찻잎 2020.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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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가 직면한 이후 내게 생긴 취미는 이거다. "애니메이션 감상"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 같은 작품이야 십대 시절에 봤지만 이십대 이후로는 뭘 본 적이 없었기에 익숙하지만 보지 못한 제목의 애니들이 정말 많다. 라프텔 정기권을 끊은 이후 킬링 타임용으로 이런저런 작품을 보게 됐는데, 첫번째 리뷰는 바로 이것.


좀비 랜드 사가, 좀비 아이돌이다.
(스포일러가 들어간 리뷰이니 열람에 주의 바랍니다.)


좀비가? 아이돌?

하여간 요즘 사람들 머리 정말 좋단 생각에 감탄했다. 호러계에 1등 공신과 요즘 일본을 휘어잡는 키워드 아이돌을 비빌 생각을 하다니. 사실 '사가'라는 말은 여러 게임에서도 자주 접한 말이라 뭔가 다른 의미가 있는 줄 알았는데 여기서는 '사가현', 즉 지명 이름이었다. 러x라이x가 학교를 일으키는 스쿨아이돌이라면 좀비랜드사가는 사가를 일으키는 좀비아이돌이다. 어쩐지 계속 느낌이 이상한데 어쨌든 우리 애들은 아이돌이기 때문에 리뷰를 이어가겠다.

시작부터 주인공이 죽는 작품은 마도조사 이래로 오랜만이다. 미나모토 사쿠라, 그는 오디션장에 가는 큰 꿈을 갖고 신나게 집을 나서던 중 죽는다. 오디션은 커녕 뭣도 시도하지 못하고 그렇게 좀비가 된다. 좀비가 된 시점은 사망일로부터 10년 후. 타츠미 코타로라는 남자는 생전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사쿠라에게 다짜고짜 아이돌이 되라는 특명을 강제로 갖다붙인다.

그리고 그런 사쿠라와 함께 아이돌이 될 멤버들은


대충 전부 전설이시다. 시체는 어디서 구해온거야 일단 유우기리라는 인물은 자막에서는 유녀라고 하지만 발음은 '오이란'이다. 오이란은 유녀들 중에서도 최고 유녀를 의미하는데, 이분이 가장 연장자. 시대로 표시되어 있는데 준코는 1980년대, 아이는 2000년대 아이돌이다. 아무튼 시대가 다른 대단한 인물들이 모였다.

의식 없이 좀비로 돌아다니던 이들은 락 스테이지에 오른 후 타에를 제외하고 정신이 돌아온다(...) 여러분은 모두 좀비이며 아이돌을 해야한다는 전개에 반발했고, 그걸 주인공인 사쿠라가 설득하고 격려한다는 내용. 역시 주인공은 다르다. "파이팅 정신"이 가득한 사람이 주인공인 작품을 극도로 선호하는 나는 곧장 "성장"으로 연결짓는다. 발전하고 변화하는 입체적인 캐릭터야말로 보는 맛을 준다.

아, 아 맞다. 이들을 긁어모은 타츠미 코타로라는 캐릭터가 초반부엔 좀 짜증난다. 처음엔 너무 신나게 지껄이길래 cv.스기타인가 눈을 흘겼으나 (스기타 좋아합니다, 조금 까빠입니다) 알고보니 마몰이더라. 온갖 성우 이벤트 내지는 예능 등지에서 보이는 미야노 마모루란 시끄럽고 (여러가지 의미로)굉장한데 아니 이건 타츠미 코타로가 아니라 그냥 미야노 마모루를 보는 기분이었다고 해야할까. 녹음 현장 분위기가 머릿속에 훤해서 간혹 과몰입을 놓치기도 했다.

요약: 타츠미 코타로=미야노 마모루


콘서트?

첫번째 무대는 락이었다. 맞다. 그 락이다. 사쿠라만 멀쩡한 상태로 7명이 무대에 선다. 좀비의 진짜 데스메탈에 심장이 떨린 관객 두 명은 그들의 팬이 된다. 팀명 데스무스메, 죽은 딸래미들? 죽은 소녀들? 환장하는줄 알았다. 좀비의 헤드뱅잉은 기상천외했고 관객들은 열광했다.

두번째 무대는 힙합이었다. 전날 있었던 사건(2화 초반 내용)으로 입에 랩이 붙었는지 사쿠라와 사키가 랩배틀을 한다.



―경로당에서. 기절하는줄 알았다. 실버의 의지를 보이라며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에게 라임을 때려 박는다. 엄청난 성원과 함께 무사히 끝난다. 좀비인 상태로는 썩은 몸이지만 도전하고 전진하면 마음은 썩지 않을 거라는 가사를 어떻게 즉흥적으로 내뱉을 수 있었을까. 랩 수준은 그닥 좋은 편은 아니었다만 유우기리와 코타로의 비트(얘 진짜 골때린다.....) 위를 구르는 사쿠라의 가사란.......... 진심으로 감탄했다.



프랑슈슈

아이돌이라면서 그룹명은 데스무스메에 이어 그린페이스. 도대체 어디가 귀여운 아이돌이냐며 7명은 팀명을 고른다. 매직을 한껏 빨아먹던 타에(아직 온전치 못함/여전히 좀비)가 미친듯이 재채기를 했고, 그걸 가만히 듣고 있던 사쿠라는 타에의 의견을 빌어 팀명을 '프랑슈슈'로 지정한다. (쟤 의견을 낸게 아니라 그냥 재채기 같은데ㅠㅠㅜㅠㅠ)

그리고 미친듯한 코타로의 미적 센스로 일종의 '굿즈'가 만들어진다. 티셔츠, 타월........은 전형적인 "디자이너들이 보면 뒷목 잡을" 디자인이다. 무지개와 조잡하고 촌스러운 로고가 한가득. 이 티셔츠도 나중에 아이돌로서의 미래가 밝아지면서 점점 고급스럽게 변화된다. (마지막화에 나온 티셔츠를 보고 우리 애들 돈 좀 벌었구나, 하고 안심했다.) 생전에 예능계에서 한따까리 하셨던 분들인 아이와 준코, 릴리의 보호는 물론 다른 인물들이 '되살아났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모든 멤버들의 예명은 0호~6호로 지어졌다.

0호 타에, 데스메탈 특화. 치킨집 cm에서 믿을 수 없는 꼬끼오를 발산했다. 입에 자꾸 뭘 물고 씹는 것이 아주 좀비인데, 사쿠라의 성원에 따라 춤을 춰주기 시작했다. 그것도 동선에 맞게.

1호 사쿠라, 실상 센터. 모든 동선과 춤은 사쿠라를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프랑슈슈는 사쿠라가 없었다면 결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2호 사키, 프랑슈슈의 리더. 행동 대장. 한 주먹 하셨던 분인지라 온갖 싸움에 능통하다.

3호 아이, 사쿠라가 동경하던 아이언프릴의 센터였던 아이돌. 팀을 이끄는 방식, 노래와 댄스 등 전체적인 동선을 수정하는 역할도 맡고 있었다.

4호 준코, 솔로로 활동했던 아이돌. 그만큼 보컬에 탁월한 듯하다. 1980년대의 아이돌은 팬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쪽이어서 지나치게 가까운 현 상황에 불만을 갖고 있다.

5호 유우기리, 명언을 남기는 포지션이라고 해야하..는데 옳은 말을 하는 사람 뺨을 때리고 그가 했던 옳은 말을 똑같이 퍼붓는다. 보다가 여러번 헷갈렸다. 악기도 다룰 줄 안다.

6호 릴리, 팀내 귀여움 담당. 영원한 12살. 무대 내내 웃고 있다. 통통 튀는 매력으로 승부. 이런 캐릭터는 어딜가든 꼭 하나 있는 것 같다.



사인(死因)

죽음에는 원인이 있다. 어이 없는 죽음이든 불운한 죽음이든, 처음엔 사인도 너무 어이가 없는 경우가 있어서 당황했다. 야외 무대에서 라이브를 하다 번개에 맞아 죽은 미즈노 아이나 턱수염이 났다는 것에 정신적인 쇼크로 사망한 릴리나...... 그 밖에 대결을 하다 죽은 사키, 교통사고로 죽은 사쿠라. 다른 인물들에 대한 것은 아직 수수께끼다. 개인적으로 유우기리와 타에의 죽음이 궁금했는데 이게 나오질 않아서 좀 아쉬웠달지.

릴리가 아빠와 만났을 적에 나는 울었고 그 후에 밝혀진 비밀(스포는 참겠다)에서 당황했으며 자기 아빠에게 헌정하는 곡을 부르는 릴리를 보고 코까지 풀면서 울었다. 죽음 이후 생전의 연을 만난다는 연출은 심하지 않았나, 그것도 하필이면 가족을.......... 그 후에 사키가 애기 엄마가 된 친구 레이코를 만났을 때도........... 아니 내가 웃자고 보는 애니에서 이렇게 울어야했나..............



릴리의 아빠와 사키의 친구, 두 사람 다 제 자식과 친구를 잊지 않고 있다는 연출도 고약했다. 사키가 좋아하는 다마고치를 여전히 가지고 있는 친구. 릴리를 잃은 충격으로 TV를 보지 못하고 있던 아빠. 이쯤되니 사쿠라와 준코의 부모도 궁금해진다. 근데 대체 어떻게 온전한 시체를 구해온거지? 코타로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었지만 사쿠라와 연이 있다는 인물이라는 점만 확실하다. 떡밥이 덜 풀린 느낌에 2기가 나왔으면도 싶은데.



이미 죽어버린 좀비들은 어떤 상황에도 죽지 않는다. 비가 오고 천둥이 치는 날, 야외 무대에 선 미즈노 아이는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고 그런 그를 준코가 커버한다. 바닥에 주저 앉아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아이는 동료들을 보고 기운을 내어 노래를 했고 그 순간 번개가 무대 위를 뚫는다. "아무렇지도 않네." "우리는 좀비니까요." 목소리에 오토튠은 왜 낀거야ㅠㅠㅠㅠㅠㅠ 손에서 레이저는 왜 나오는거야ㅠㅠㅠㅠㅠㅠㅠ 자체 오토튠 효과로 프랑슈슈는 무사히 무대를 마무리한다. 아 이거 분명 감동적인 장면이었던거 같긴한데..........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어째 준코를 기점으로 사키까지 자기가 죽었던 일을 똑같이 반복한다. 원래 일본 일진들은 이렇게 무서운가.. 바이크를 타고 달려서 부딪치기 전에 브레이크를 잡는데, 먼저 브레이크를 잡는 쪽이 패배다. 사키는 브레이크를 잡지 않고 떨어져 폭발 사고에 휘말려 사망했으나 이번엔 좀비니까 죽지 않고 살아... ...? 아무튼 멀쩡하게 돌아온다. 난 사키를 잃었던 그 광경을 한번 더 보게 된 친구 레이코가 너무도 안타까웠다. 이건 좀 많이 심하지 않았나?

아무튼 이런 저런 사건으로 우리의 프랑슈슈는 인지도를 올려간다. 그렇게 단독 콘서트를 열게 되는 날이 오게 되는데.



알피노 콘서트

콘서트가 열리게 될 무대를 본 사쿠라는 이상한 기시감에 휩싸인다. 생전에 봤던 아이언 프릴의 무대의 잔상이 떠오르면서, '이 무대에 기억을 되찾을 수 있는 열쇠가 있다!'는 믿음으로 열심히 연습에 매진한다. 문제는 그 열심이 너무도 이기적인 형태로 굴러갔단 것. 팀원과 함께 가는 것이 아니라 혼자 앞서가는 것은 연습 내내 다른 팀원보다 빠른 박자로 춤을 추는 것으로 여실히 드러난다. 코타로는 사쿠라가 머리를 식힐 수 있도록 프랑슈슈를 모두 산으로 보내버리지만 오히려 역효과가 나버리고.

결국 팀원들과 다툼 아닌 다툼을 한 사쿠라는 끝까지 제 생각을 고치지 않고 연습실로 돌아오다 6명의 멤버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보게 된다. 착착 맞는 군무에 감탄하기도 잠시, 여섯명이 모여서 동선을 체크하고 안무를 수정하면서도 사쿠라를 배려하고 그를 생각하는 모습에 반성한다. 산에서도 연습실에서도 자신은 프랑슈슈가 아닌 혼자로 지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멤버들에게 사과하고 상황은 일단락 되는 것 같았는데.



―조깅을 가던 사쿠라가 트럭에 치이면서 상황은 악화된다.

1화의 제목 굿모닝 사가, 12화의 제목은 어게인 굿모닝 사가. 좀비로써의 삶의 기억을 모두 잃고 정신을 차린 사쿠라는 생전의 기억만 또렷한 상태. 좀비들을 보고 비명을 지르는 그에게 미즈노 아이가 나서서 상황을 설명하고 아이돌로써 무대에 서야한다고 설득하지만 미나모토 사쿠라는 거절한다. (!) 이유인즉, 자신은 운이 굉장히 나쁘다는 것.

그가 열심히 노력한 일은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당일에 갑자기 아프거나, 어떤 상황에 휘말리는 등 그렇게 고등학교 입시까지 망쳤다. 그렇게 기운이 없던 사쿠라에게 다시금 꿈을 불어준 사람은 아이언 프릴 시절의 미즈노 아이였고, 그렇게 아이돌의 꿈을 갖고 힘차게 집을 나선 그는 트럭에 치여 죽고 말았다........... 나같아도 좀비로 살아있는 현재마저 저주스럽겠다. 노력에 대한 어떤 자그마한 댓가도 얻지 못하면 사람은 고장나고 만다. 입시의 실패, 사업의 실패, 취직의 실패 등. 생각보다 도처에 널려있는 일들을 미나모토 사쿠라는 생전에 가득히 누려버렸으니 이만큼 절망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때 독백하던 사쿠라가 너무 불쌍하고 너무 안쓰러웠다..... 아 진짜 너무 불쌍해.......



"나는 운이 나쁘니까 모두에게 피해만 끼칠 것이다." 그런 사쿠라를 이번엔 동료들이 격려한다. 코타로마저 "네가 운이 나쁘면 뭐 어쩌라고, 내 운이 좋으니까 그걸로 됐어!"라는 식의 대사까지 치니 철벽을 세우고 피하던 사쿠라는 결국 연습을 시작한다.



다행히 이전에 했던 연습이 몸에 벤 탓에 어렵지 않게 이어나간다. 그렇게 대망의 콘서트일. 폭설이 내렸지만 팬들은 가득 모였다. 눈이 과하게 쌓이면서 건물 바깥에 세워둔 지지대가 무너져 무대가 박살이 났지만 프랑슈슈는 멈추지 않고 노래했다. 제 운을 탓하던 사쿠라는 유우기리의 말을 기억하며 노래를 계속하는데, 절규에 가까운 노랫소리에 무심코 그들을 응원해버리고 말았다. 그랬다.. 프랑슈슈는 이미 나의 아이돌이 되어버린 것이다.....

중요한 콘서트 부분을 일부러 짧게 서술했는데, 제발 부디 라프텔에서 직접 확인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최대한 요약했다. 애니 자체에서 2기가 나올 것 같은 떡밥도 몇 자락 뿌려졌는데 과연, 타에의 정체도 밝혀지지 않았고 코타로가 사쿠라와 무슨 관계였는지도 아직 모른다. 분~명 언젠간 좀비라는 사실도 들킬 것이 훤한데 들킨 후에 대중들의 반응도 궁금하고 프랑슈슈의 행보도 궁금하고. 노래도 나쁘지 않았어서 2기가 나왔음 좋겠다. (개인적으로 사키가 센터였던 곡이 꽤 좋았다.)


총평

죽은 좀비들도 꿈을 위해 노력하는데 살아있는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있나, 하는 자아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다 결심한 것이 바로 리뷰 작성하기인데 애니를 보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감상을 적어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시작하게 됐다. 마치 독후감을 쓰듯 지금껏 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리뷰를 짧게나마 남겨볼 참이다. 누군가와 의견을 나눌 수 있다면 그 또한 최고.

좀비 랜드 사가, 마냥 병맛이라고 치부하고 볼 애니메이션은 아니다. 삶이 무료하고 노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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